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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는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다?

기사승인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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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에서 성공회가 프로테스탄트에 속하지 않으려고 소송을 하고 있다.

집트 성공회가 독립적인 이집트 교회로 국가의 인증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이집트의 최고위 복음주의 지도자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고, 이집트의 최고위 성공회 지도자가 비난했다.

이 마찰은 2001년에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지난여름 이집트 최고 행정법원이 성공회의 독립성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 판결은 ‘성공회 이집트 교구’는 이집트 프로테스탄트교회 연합회PEC의 정식 회원으로서만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8개 교단을 대표하는 이 연합단체는 이집트 개신교회 내의 혼인과 사망, 재산소유권, 비자, 교리적인 문제를 제외한 법적인 문제들을 관리하고 조정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공동체의 일치이다.” 안드레아 자키 PCE 회장이 말했다. 그는 장로교회 목사다. “나는 PCE가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분열은 프로테스탄트를 약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량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2016년 6월 판결 후, 성공회의 마우너 아니스 주교는 하급 법원에서 새로운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2월 법정 심리에서 성공회 변호인들은 6월 판결에 절차상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이집트 대통령이 성공회의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청원을 다루지 않았다고 성공회 측은 주장했다.

“우리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집트에 있었다.” 보수적 성공회 지도자들의 네트워크인 ‘글로벌 사우스’에 가담하고 있는 성공회 지도자들 중에서 최고위에 속하는 아니스 주교의 주장이다.
 

 

이집트 그리스도인들은 3개 범주로 나뉜다:
정교회, 가톨릭,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아니스 주교는 PCE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확신한다. 만약 성공회가 이집트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이집트 교회로 인정을 받게 되면, 다른 프로테스탄트 단체들도 성공회의 선례를 따르게 될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공식 연합기구로서의 PCE의 정체성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니스 주교는 전임 주교가 PCE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 연합회가 성공회의 가입을 승인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아니스는 지난봄에 자키를 개인적으로 만나 이러한 입장 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제안했지만, 자키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이것은 파워 플레이입니다.” 아니스가 말했다. 그는 PCE의 조치를 “적대적 인수합병”이라고 세계 성공회 뉴스 서비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PCE에 가입하라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법원 판결이 우리의 관계를 통제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PCE는 성공회 교회가 PCE로부터 혼인 등록을 접수할 수 있는 허가를 발급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1944년에 작성된 문서를 공개했다. PCE는 이 문서를 비롯한 몇 건의 문서들이 성공회가 사실상 오랫동안 PCE의 명백한 회원임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18개 교단을 이집트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대표한다.

 

 

논쟁은 1882년부터 1956년까지 영국군이 이집트를 관리하고 영국국교회 재외 성직자가 이집트 전역의 성공회 교구 교회에서 사제로 활동하면서부터 복잡하게 얽혔다. 영국이 철수한 뒤에 이 교회들은 영국국교회의 독립교회가 되었다.

이집트 성공회 교구는 자기들은 PCE의 공식 가맹 회원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집트 성공회는 1976년에 세워진 ‘예루살렘과 중동 관구’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키는 이러한 주장에 반박한다. 1974년부터 1981년까지 성공회 주교였던 이샤크 무사드가 이집트 성공회의 PCE 정식 회원 가입을 신청하는 문서에 서명했다고 주장한다. 성공회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관구만이 자기네가 PCE에 가입하는 것에 대한 승인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예루살렘 관구는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PCE를 이끌었던 사프와트 알바이아디는 성공회 교구는 1980년대 PCE에 가입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탄압을 받았고 우리의 도움을 요청했다. 영국인들이 떠난 뒤에 이집트 정부가 그들의 재산을 접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영국인이 아닌 이집트인의 교회라는 보증이 필요했다.” 그가 말했다. “PCE는 처음에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었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이집트에 성공회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공회와 PCE(장로교회가 주도하고 있다)의 관계는 또한 수에즈 운하 인근의 교회 재산들을 두고 벌어진 불화 때문에 더욱 복잡해졌다. 수년 전에 법원 중재로 성공회는 ‘우리 구주의 교회’에 대한 관할권을 장로교회로부터 넘겨받았다. ‘모든 성도의 이스마일리아 교회’의 소유권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법률 하에서 이집트 교회들과 단체들은 정교회,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로 분류되었다. “우리는 거의 1500개의 지역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200만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이 우리에게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게와 힘과 존재와 영향력의 바탕이다.” 자키는 말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일치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성공회를 끌어들여 그들을 통제하려는 문제가 아니다.”

 


‘이집트 성공회(1839)의 역사는 PCE(1902)의 역사보다 63년 앞선다.
 

 

이집트의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저자인 히더 샤키는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이런 종류의 논쟁은 역사적으로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에 성공회와 복음주의 공동체들은 긴밀하게 협조했다. 실제적인 구분과 자율성이 남아있을 때조차도 말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수인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언론의 보도는 “마치 성공회가 존재론적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정부로서는 단일의 프로테스탄트 공동체와 상대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지만, 그 정부에 대해서 프로테스탄트들 자신들이 연합된 전선을 보여주는 것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익이 있다.” 샤키는 말했다. 그는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들도 한때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일치는 생존 전략으로서 매우 유용하다.” CT/CTK 2017:3

티모시 C. 모건 휘튼 칼리지 언론 프로그램 디렉터. 이 기사는 이집트의 제이슨 캐스퍼의 리포터를 기초로 작성되었다.
 

 

 

 

티모시 C. 모건 Timothy C. Morgan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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