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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생명을 나누는

기사승인 2017.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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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브랜드의 ‘피의 힘’

   
Shutterstock

학과 피에 대한 관념이 송두리째 바뀐 건 코노트 병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오밤중에 병원 직원들이 다짜고짜 침상 하나를 밀고 병동에 들이닥쳤다.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가 누워 있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이미 피를 많이 흘려서 얼굴이 섬뜩하리만치 창백했다. 밝은 갈색 머리칼이 칠흑같이 까매 보일 정도였다. 산소 공급이 끊어지면서 의식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심각한 손상을 입은 환자를 두고 의료진은 분주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가 수혈 도구를 챙기는 사이에 간호사는 혈액을 구하러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또 다른 의사는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나를 흘낏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혈압계를 떠안겼다. 맥을 잡고 혈압 재는 법을 공부해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환자의 차갑고 축축한 손목에서는 맥박이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차가운 병원 불빛을 받은 아가씨는 밀랍으로 만든 성모상이나 성당을 장식하는 성인들의 석고상처럼 보였다. 입술까지 파리했다. 의사는 환자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청진기를 들이댔다. 조그만 가슴에 달린 젖꼭지까지 하얗게 변한 게 보였다. 온통 창백한 가운데 주근깨 몇 점만 도드라져보였다. 숨을 쉬는 기척도 없었다. 십중팔구 세상을 떠났겠구나 싶었다.

마침내 간호사가 혈액을 가져다가 스탠드에 걸자 의사는 아가씨의 혈관에 굵은 바늘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피가 담긴 병을 최대한 높이 매달고 더 긴 튜브를 써서 압력을 높였다. 혈액이 환자의 몸에 더 빨리 들어가게 하려는 조처였다. 주치의는 혈액을 더 구해야 한다면서 병이 비는지 잘 지켜보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얼마나 놀라웠던지 지금도 상황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의료진들이 모두 빠져나가자마자 초조한 마음으로 얼른 환자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희미하나마 문득문득 맥이 뛰는 것 같았다. 내 손가락의 박동이 느껴지는 건가? 다시 한 번 살폈다. 분명히 맥이 있었다.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약하긴 했지만 분명히 규칙적인 파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새로 혈액이 도착했다. 곧장 튜브에 연결했다. 수채화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진 듯 뺨에 옅은 분홍색 기운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조그만 점에 지나지 않았지만 차츰 넓게 번져서 어여쁜 홍조가 피어올랐다. 입술에도 핑크빛이 감돌더니 갈수록 빨개졌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온몸이 가볍게 들썩였다.

이윽고 눈꺼풀이 부드럽게 떨리더니 활짝 열렸다. 병실의 환한 불빛이 눈부신지 미간을 찌푸렸다. 동공이 수축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금방 날 똑바로 쳐다보며 목이 마르다고 했다. 놀랍고 또 놀라운 일이었다.

아가씨는 한 시간 남짓 내 삶에 들어왔다 나갔지만 그 경험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주검이 되살아나는 기적을 두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는가! 창조주가 하와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만드시는 장면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의술이, 피가,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니…. [전문 보기: 피, 생명을 나누는]

폴 브랜드, 필립 얀시 CT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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