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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사용은 본질적으로 악하다

기사승인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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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의 어떤 지도자에게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WHERE WE STAND 지금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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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계속 위협하면 북한은 “세계가 이제껏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세계 곳곳에서 그야말로 “화염과 분노”의 반응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인즉슨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암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발언의 중량감으로 보건대,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세계는 미국의 이와 같은 태도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트럼프의 발언에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발언에 실제로 환호하는 (또 그보다 더한 반응을 보내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핵무기에 대하여 갈라져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장로교회(PCA)의 1987년 연구 보고서―“핵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를 인용해 보겠다. “전면적 핵전쟁으로 확대될 한편의 가능성과 전체주의 세력에 예속될 수 있는 다른 한편의 확실성이라는 딜레마 가운데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절대적인 도덕적 의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보고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자국 정부의 처분에 자신들을 맡겨야 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대량 살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훨씬 더 악한 파국을 막기 위한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핵 보복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용한 두 부분은 뉘앙스만 다를 뿐, 요지는 분명하다: 극단적인 경우에, 핵무기의 사용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의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와 핵무기의 무차별적 속성을 핵무기 사용 반대의 근거로 제시한다. 간단히 말해서, 핵무기는 전투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간인들을 살상하게 되며, 따라서, 핵무기 사용은 ‘정당한 전쟁’의 핵심 원칙 하나 곧 비례의 원칙(과잉금지의 원칙)을 침해하게 된다.

불행히도 모든 전쟁은 민간인의 사망을 수반하지만, 정당한 전쟁론은 주장하기를, “무고한 민간인은 절대로 전쟁의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군인들은 항상 민간인 살상을 피해야 한다.”

중동에서 미군이 민간인을 살상한 보고를 이따금 접하게 되지만, 미군은 이를 피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미군은 칭찬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핵폭탄은 그 속성상 민간인 대량살상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핵무기를 사용한 상호 보복 타격은 결국 중세의 지옥 그림을 연상시키는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굳이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죽음 밖에는

핵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무기들을 완전하게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35년 전에 이 문제를 다룬 적 있다: 원자폭탄 세상에서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최선의 노력은 무엇일까? 신중한 협상 과정이―궁극적으로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여, 우선 핵무기를 감축하고 그 다음에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모두를 파기하는―이러한 목표를 향해 나가가는 가장 가시적인 길이다.”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세부 사항을 논할 자리는 아니지만, 우리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어떤 정당성도 찾을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음을 여기서 거듭 밝힌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입장이 아니다. 가장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빌리 그레이엄도 여기에 포함된다―과 정치인들 가운데 일부도 핵무기는 본질적으로 악하며, 노골적으로 말해서, “전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전적으로 비인간적이며, 무엇에도 이롭지 않으며, 단지 죽음만 가져올 뿐이며 이 땅의 생명과 문명을 파괴할 것”(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몇 년 전월 스트리트 저널에 두 명의 전 국무장관(조지 슐츠, 헨리 키신저)과 전 국방장관(윌리엄 페리), 전 상원군사위원회 위원장(샘 눈)이 이러한 입장을 발표했다: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목표 설정을 지지한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현 대통령이 “세계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핵무기의 무차별적 사용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했다는 사실은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복음주의 형제들 가운데 일부의 반응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분노에 자극을 받은 댈러스 제일침례교회의 로버트 제프리스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경우에 하나님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그는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미국 정부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것은 김정은 같은 사악한 인간의 행동을 진압하기 위한 암살일 수도 있고, 처형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가혹한 처벌일 수도 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더라고 그의 발언을 최소한 정제하고 완화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PCA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마크 툴리가 내셔널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기독교 정치신학은 죄 많고 유한한 인간이 어떤 정치적 판단에 내릴 때에는 확신이 아니라 온건한 태도를 갖고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쟁점들에서 대해서 평가해야 할 때는, 최소한 그들이 매우 복잡하고 도덕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 호전적인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로마서 13장 다시 읽기

제프리스처럼,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접근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로마서 13장을 인용한다. 먼저 문제의 그 구절(로마서 13:1-5)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해야 합니다. [전문 보기: 핵무기 사용은 본질적으로 악하다]

 

마크 갤리 CT 편집인
Mark Galli, “The Use of Nuclear Weapons Is Inherently Evil” CT 2017.8.11.; CTK 2017:9

 

마크 갤리 Mark Galli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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