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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라진 경제, 희망은 어디에

기사승인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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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이 우리가 하는 일의 절반을 가져갈 것이다. 그래도 두려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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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를 설명할 때 경제 성장과 경제 축economic pivot을 구분한다. 성장은 상품과 서비스를 증가시킨다. 축은 이러한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되고 전달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영화를 생각해 보자: 한때는 영화를 보려면 벽돌과 모르타르로 지은 대여점을 찾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디지털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점원은 필요 없다.)

노동시장이 축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들 말하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써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시티그룹Citigroup과 옥스퍼드 대학교의 공동연구 결과를 보면, 앞으로 10년 안에 직업의 47퍼센트가 자동화될 수 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전체 직업의 거의 절반을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자동화 매점, 로봇 점원, 자가 학습 소프트웨어, 3D 프린터, 기타 인공지능들―이 대체할 수 있다.

제조업 일자리 상실의 가장 큰 원흉은, 교역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라고 경제학자들은 지적한다. MIT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에 미국에서 산업 로봇 한 대를 새로 들여놓을 때마다 3~6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로봇은 미국에서만 수백만 개의 경력을 단절시킬 것이며, 이런 경력 단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게 된 기술을 가진 중간 경력자로 전락하여 불완전 고용 상태나, 더 나쁜 경우에는, 실직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안정감을 주던 예측 가능한 노동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에 충격을 줄 것이다.

솔직해지자: 불확실한 취업 전망은 가장 깊은 수준의 두려움을 유발한다. 평범한 현대인들의 모범은 열심히 일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사람이다. 앞으로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우리의 전제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내러티브를―능력과 시장의 힘이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우리는 시장을 초월하는 가치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이야기인지를―믿고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가 어느 쪽 이야기를 따르느냐에 따라 일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과 행동이 결정된다. 그러나 한 이야기만이 로봇의 그림자가 밀려오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일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일에 대한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이야기를 우리는 물질주의 내러티브materialist narrative라 부를 것이다. 물질주의 내러티브의 뿌리는 인간을 생존능력에 따라 규정하는, 다원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이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skills을 가진 사람들은 내일을 이어가고, 그 기술을 능력주의 사회의 특권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다.

물질주의 내러티브에서는 인간 목적보다 실용주의―유효하면, 살아남는다―가 먼저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그리고 심지어 대부분의 미국 그리스도인들이, 이 내러티브에 기대어 이렇게 생각한다.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인간끼리 경쟁하고 있을 때, 이 내러티브는 고학력과 훌륭한 경력을 갖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구미에 당기는 것이었고, 심지어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 아닌 것들이 이 경쟁 안으로 들어오자, 더욱 혼란스러운 현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14년 다큐멘터리 인간은 필요 없다Humans Need Not Apply에서 그레이C. G. P. Grey 감독은 인간을 말에 비유했다. 새로운 형태의 운송수단과 기계 장치 때문에 1915년 이후 말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더 나은 테크놀로지가 더 많은, 더 나은 일자리를 말들에게 만들어 준다고 말하는 경제 법칙은 없다.…그러나 말 대신에 인간을 대입하면, 사람들은 그럭저럭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바꾼다.”

일터에서 기계들이 마치 우리의 동료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인데다, 조만간 컴퓨터의 복합성이 우리 두뇌의 복합성을 능가하게 되면, 인간이 대체가능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윌리엄 데이비도우와 마이클 맬런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썼듯이, “우리는 조만간 경제 가치가 제로인 시민 무리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이러한 전망에는 비관이 깔려있다. 우리의 삶의 가치를 경제적 생산성에서만 찾는다면,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절반이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에 의해 대체된다면, 우리가 서 있을 곳은 없다. 우리는 모든 가치를 강탈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질주의 내러티브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인류가 생존의 대격변기에 있다면, 사람들은 창조가 아니라 소비에, 협력이 아니라 경쟁에 몰두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사실을 더 잘 안다.

인간은 살아남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관계 능력과 도덕 감각도 물려받았다. 우리는 자기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또한 이기심을 버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도 있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다. 우리는 소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발명하고, 설계하고, 생산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신중하게 설계되었다.

이것을 물질주의 내러티브는 완전히 놓치고 있다. 우리의 ‘노동 불확실성’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른 틀, 우리가 창조 내러티브creation narrative라 부를 그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길, 하나님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관계적이시다. 창조 내러티브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인생은 지극히 가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다(창1:26-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가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 담긴 뜻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 인간은 설계 되었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며 관계적인 설계자를 닮았다면, 우리 인간을 말이나 컴퓨터, 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담지 않은 어떤 것과 비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회의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기에는 신학적인 이유도 있지만, 또한 실제적인 이유도 있다: 마이클 해리스가 결핍의 상실The End of Absence에서 썼듯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가장 복잡한 컴퓨터 시스템, 그리고 가장 발전된 인공지능에도 “단 한 명의 인간 지성의 잘 연마된 내러티브 원동력이 결여되어 있다.” 소프트웨어와 회로는, 뇌의 기계적 처리를 모델로 삼지만, 지성의 겹겹이 쌓인 복잡성을 완전히 복제할 수는 없다. 이 점을 과학자 에머슨 퓨Emerson Pugh는 이렇게 지적했다: “인간의 뇌가 매우 단순해서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 단순해서 우리의 뇌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인간에게는 특별한 소명과 은사들이 있다. 일은 유쾌하지 않은 수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 또는 지위와 신분 추구를 위한 수단 그 훨씬 이상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소비자가 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창조적으로 섬기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반영하는 우리의 능력들을 활용하여 당신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북 캘리포니아 대학교 프레드 브룩스 교수는 그리스도인이고 세계 최정상 컴퓨터 과학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돌봄을 실행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은 양도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로봇이 간호사의 일을 돕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브룩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봇이 인간처럼 그것을 할까요? 아닙니다.” 인간들이 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들은 간단하게 자동화될 수 없다. “로봇이 실수 없이 더 나은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 로봇들이 당신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과 똑같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양심과 도덕적 인식은 우리를 외부의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적인 주체가 되게 한다. 창조 내러티브는 인간을 도덕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 구글 모기업의 집행이사회 의장인 에릭 슈미트가 유저의 데이터를 충분히 제공 받는다면 자기 회사는 “당신을 더 스마트하게”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구글의 알고리즘들은 결코 인간을 너 낫게 만들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가 점점 더 데이터 중심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줄 것이지만, 결코 도덕적 탁월함이나 더욱 깊이 사색하는 도덕적 상상력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자유행동free agency과 의무obligation; 타인들과의 의미 있는 연결; 긍휼과 선의지와 헌신, 모두가 있다. 우리 존재의 가장 심오한 속성들은 결코 프로그램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속성들은 논리가 아니라 영혼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우리의 영광이다. [전문 보기: 사람이 사라진 경제, 희망은 어디에]
 

케빈 브라운 애즈베리 대학교 경영학 부교수이다.
스티븐 맥뮬런 호프 칼리지 경영학 부교수이다.
Kevin Brown, Steven McMullen, “Hope in the Humanless Economy” CT 2017:7/8; CTK 2017:9

케빈 브라운, 스티븐 맥뮬런 Kevin Brown, Steven McMu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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