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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의 전 트라우마

기사승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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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추석과 며느리. 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네 번째 공감일기를 썼다. 엄청 빨리. 구구절절 내 한풀이로 가득한 그런 글. 쓰면서도 불안하긴 했다. 큰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하니,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좀 절제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며 혹독한 비평을 내놓았다. 그래, 나도 모르게 내가 명절에 경험하고 느낀 여러 가지를 철저하게 나 중심으로 늘어놓았으니, 그럴 법도. 엄마가 부끄럽구나. 도공이 자신의 도자기를 망치로 부수듯 다시 쓰기로 한다. 못내 부숴버리지 못한 부끄러운 글은 번외 편으로 숨겨두기로.

하지만, 그렇다고 공감일기를 쓰는 아줌마로서 이 문제를 그냥 덮고 가는 건 무책임한 거 아닐까? 고민에 빠졌고, 다시 심기일전해 이 가을, 아줌마들을 대표해 뭔가 이야기하리라는 결심에 이르렀다. 한풀이는 절제하고 느낌 있게! 마감까지 얼마 안 남았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래, 딱 한 가지에 집중하자! 전, 나는 너로 결정했다. 그렇다. 바로 동태전, 동그랑땡, 애호박전, 바로 그 전이다.

가 처음으로 전을 부치기 시작한 건, 1999년 가을, 결혼 전이었다. 어쩌다 보니 명절 즈음 예비 시댁을 방문하게 되었고, 방문한 김에 인턴 며느리 느낌으로 전에 입문했다. 쪼그리고 앉아 작은 사각 전기 프라이팬에다 동태전을 부쳤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나쁘지 않다. 분명 그랬다. 작은 어머님과 함께 동태전을 뒤집으며 ‘나도 이제 새댁이 되는 구나!’ 꿈에 부풀었던 기억들. 신나게 동태전을 뒤집었다. 설거지를 했다. 며느리 놀이 정도 한 느낌이었다. 일 때문에 매우 힘들었던 시기였다. 주말 예능 프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반인 출연 섭외를 위해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씨름했다. ‘아, 돈 벌기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두고, 결혼을 해서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요리하며 청소하며 살고 싶어.’ 그 낡은 사각 전기 프라이팬은 위쪽은 타고 아래쪽은 안 익는 고물이었지만, 그것도 모른 채 나는 신나게 전을 부쳤다.

그리고 결혼했고, 그 후로도 나는 몇 년이나 그 프라이팬 앞에서 대여섯 시간씩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쳤다. 위쪽에 놓은 전이 타기 전에 아래쪽으로 옮겨가며 나는 그 프라이팬에 적응했다. 홈쇼핑에서는 와이드 전기 프라이팬을 명절 즈음마다 그렇게 방송을 해댔지만, 난 결국 그걸 사지 못했다. 반항처럼 보일까봐 그랬던 건지. 암튼.

더 비극적인 건 결혼을 하고 내가 진정한 ‘전의 책임자’가 되었는데, 내가 이 분야에 진짜 소질이 없더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선비처럼 키워졌다. 책 읽고 글 쓰고. 그렇다고 뭐 그걸 대단히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걸 잘해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전 부치기, 요리 뭐 그런 걸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요리에 재능이 없고 손에도 힘이 없는 스타일이라 뭘 해도 오래 걸리고 예쁘게 못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못하니까,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프라이팬이 이상해도 이상하다 말을 못하고, 그저 하라는 대로만 움직였다. 우물 같은 성정의 시어머니와 주눅 든 며느리. 부엌엔 늘 정적만 흘렀다.

재료 준비도 어머님이 하고, 나는 그저 프라이팬 앞에 앉아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물 발라 앞뒤로 뒤집으며 익히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그렇게 오래 주저앉아 뭘 해본 적도 없고, 허리며 다리며 얼마나 저리고 아픈지,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쟤는 왜 저렇게 들썩대나’ 하는 시어머님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나는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허리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 기름 가득한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유증기 때문에 눈알이 빠질 듯 아프다. 두통이 밀려온다. 창문이라도 열면 좋을 텐데, 그 창문마저 내 마음대로 막 열어젖히질 못했다. 어머님이 쟁반에 산더미처럼 쌓아주신(물론 산더미는 나의 개인적인 관점이다) 물 짜낸 해동 동태살을 부서지지 않게 하나하나 밀가루를 발라 달걀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하나씩 올린다. 뒤집고 다시 뒤집고. 넓은 소쿠리에 다 익은 전을 툭툭 던진다. 금방 쌓이기 시작하면, 그게 또 나를 유혹한다. 그 힘든 와중에도 기름 머금은 동태전 한 귀퉁이 톡 떼어 한입 문다. 맛. 있. 다. 심기일전. 나는 다시 프라이팬과의 씨름을 시작한다.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고 허리가 끓어지면, 동태전이 마무리 된다. 그리고 텅텅텅텅 애호박 잘리는 소리가 들린다. 호박이 쌌던 모양이다. 한 열 개 쯤 소쿠리에 쌓여 있는 느낌이다. 자르는 건 쉽지만, 그걸 하나하나 밀가루 발라 달걀옷 입혀 프라이팬에 하나씩 눕히고, 홍고추 썬 것으로 장식을 해가며 전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역시나 힘들다. 그나마 애호박전은 동그랑땡에 견주면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돼지고기며 두부며 막 넣어 주무르면 그 양이 어마어마해진다. 그걸 다 동글동글 빚는 것은 또 얼마나 고역인지…. 동그랑땡이 둥그렁땡이 되면, 바로 이어지는 어머님의 지적. “크면 잘 안 익는다.” 작게 작게 동그랗게 동그랗게 다시 빚는다. 그걸 다시 하나하나 밀가루 바르고 달걀옷 입혀 프라이팬에 정렬시켜 뒤집어가며 익힌다. 전 소쿠리에 동그랑땡이 거대한 산을 이룬다. 마무리! 동그랑땡, 그냥 한입 먹어도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의외로 티 안 나게 노동집약적이다.

동태전, 애호박전, 동그랑땡. 그 다음엔 맛살도 두 개씩 붙여 부치고. 아! 오징어. 결혼 초기에 어머님은 오징어 전에 매우 집착하셨다. 덕분에 나는 돌돌 말리는 오징어 살을 펴가며 네모난 오징어 전을 부쳤다. 흑. 이건 정말 고난이도 작업이었다. 손도 뜨겁고, 얼굴도 뜨겁고. 요즘은 안 하신다. 이렇게 끝? 아니다. 추석 전, TV에서 녹두전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라도 나오고, 가족 누군가 ‘녹두전은?’ 뭐 그런 한마디라도 했다면, 그걸 그냥 넘기실 우리 어머님이 아니다. 이미 시뻘건 고무 “다라이”에 녹두 반죽이 담겨 있다. ‘아, 녹두전까지…, 미리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그 한마디를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킨다. 식용유 한 병 클리어. 새 식용유비닐 캡 제거. 부엌 벽 디지털시계는 PM 5:30. 나는 영혼도 표정도 없다. 시어머니가 뭐라 하시든 “네네.” 이젠 앉았다 일어났다도 하지 않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차라리 기절을 해 응급실에 실려 가기를, 나는 그렇게 기도했다. 안 좋은 기억. 왜 이렇게 한숨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우진아, 엄마가 절제하겠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안 된다.”

남들 다 해먹는 음식이고, 전 부치다 기절을 했다거나 숨이 넘어간 사례도 없는데 왜 그리 유난이냐고 말한다면, 말해주겠다.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유증기가 얼마나 인체에 해로운지. 고정된 자세로 하는 장시간 노동이 허리며 다리에 얼마나 큰 무리가 되는지. 당신의 어머니의 허리가 자주 아프신 이유, 다른 데서 찾지 말라고. 하루 종일 유증기를 마시면서 같은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전을 매년 두 세 번씩 부친다면 누구라도 안 아프고는 못 배길 거라고. 제발, 전 먹고 싶다는 말 말아주세요. 전 맛있게 먹는 TV 장면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명절 몇 주 전부터 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쭈그리고 앉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 놈의 전, 그 전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호랑이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어 버린다.

결국 명절 하루 전 그나마 서서 전을 부칠 수 있는 우리 집에서 전을 만들어 당일 아침 일찍 가지고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재료 준비부터 모두 내 몫이고, 거의 새벽부터 전을 부치는데, 해가 다 져야 작업이 끝난다. 하루 종일 부엌을 초토화 시켜가며 부쳤는데, 다 치우고 부친 전을 통에 담으면 이상하게 얼마 안 된다. 이걸 하느라 이 고생을 했다니. 아, 이 세상에 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와서 꽂힌다. “이게 다냐?” [전문 보기: 하와의 전 트라우마]
 

임지원 주부. 딸 둘과 남편 넷이서 경기도 일산에서 씩씩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임지원 CTK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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