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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용서하라’고만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기사승인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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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희생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PHOTO BY DARIA NEPRIAKHINA / UNSPLASH

크숍을 마치고 나니, 나와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20대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기독교는 여성들에게 좋은 건가요?” 그들은 내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관련하여 까다로운 성경구절들을 다룬 것을 고마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과 가정에서의 성역할에 관한, 내가 짐작했던 질문들을 했다. 구불구불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젊고 아름다운 숙녀가 몸을 숙이고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성적 학대와 강간을 당했을 때 용서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그녀가 고통과 배반과 수치를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뒤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기에) 그날 그녀는 내게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전에 그냥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조언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였었다고 했다. “저는 여전히 분노를 느껴요.” 그녀가 고백했다. “이것이 잘못된 걸까요?”

이것은 우리가 물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미투 운동은 우리를 이러한 분노의 조류 속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거물로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팀 주치의에 이르기까지, 또 눈물을 쏟아내는 목사들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의 명단은 계속 늘어났고, 그들의 범죄 행위는 더 많이 늘어났다.

일반 대중의 귀에 들어간 그 모든 이야기와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여성들의 개인적 고통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폭행당한 여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용서일까?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눅11:4) 예수님은 우리가 악행을 당했을 때, 우리의 관용과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용서를 명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마18:22) 또 우리는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명령은 단순하지만, 용서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처음보다 더 큰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분노

우리는 성경에서 여인이 폭행으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의와 더불어 그분의 분노를 본다. 다윗 왕의 사건에서처럼 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를 본다. 나는 다윗이 강압적으로 밧세바를 침상으로 끌어들이고, 그 다음 그녀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자 남편을 죽인 사건은 여기서 그치겠다. 왜냐하면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아기의 죽음으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대신 자기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자기 딸 다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사무엘하 13장). 암논은 다말을 그의 침실로 끌어들이려고 아픈 척한다. 그리고 그녀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강간한다. “오히려 더 센 힘으로 그를 눕혀서, 억지로 욕을 보였다.”(삼하13:14)

아들의 범죄에 대한 다윗의 분노는 무기력하고 약하다. 그리고 그는 암논의 잘못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이 암논을 죽임으로써 여동생이 당한 수치에 대한 복수를 한다. 아버지가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분열한다.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사실, 곧 폭력과 그것에 대한 침묵은 둘 다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경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말을 통해 하나님은 여성 폭력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신다. 예를 들어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거짓말을 한다. 사라는 자기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거짓말 하는 바람에 아비멜렉은 자기 마음대로 사라를 취할 수 있는 하렘으로 그녀를 데려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가까이하기 전에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남의 아내를 데려간 벌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아비멜렉이 “큰 죄”를 진 아브라함과 대면하여 따진다. “당신은 나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거요.”(창20:9)

 

공모와 침묵

분명히 성경에는 여성을 폭력의 손아귀에 밀어 넣는 남자, 또 폭력 행위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정의를 행하지 않는 사례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아비멜렉에게 거짓말하기에 앞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신분에 대해 바로에게도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사라는 바로의 “아내들”가운데 하나로 불려갔다(창12:10–20).

야곱은 그의 딸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창세기 34장“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것을 읽는 여성들을 깔아뭉갤 수도 있고, 그 가운데 일부는 특정 구절에 나타난 침묵을 그들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은 성경 속의 하나님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다. 이보다 더 힘든 것은, 이러한 구절들이 설교에서 배제될 때, 여성들은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대응에 대해 궁금한 상태로 남는다는 것이다. 시편 저자의 명령에 대해 훗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라는 바울의 말을 내세워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시4:4엡4:26) 공의를 실천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것(미6:8), 이 둘을 동시에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우리가 또 폭행당한 여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보여주셨던)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용서라는 말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면, 복음은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에게만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전문 보기: 성경은 ‘용서하라’고만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젠 폴락 미셸 Teach Us to Want와 Keeping Place의 저자. 남편과 다섯 자녀들과 함께 토론토에 살고 있다. 더 많은 정보는 JenPollockMichel.com에서.
Jen Pollock Michel, “Scrtipture says more than just ‘forgive’” CT SPECIAL ISSUE HEARDCTK 2018:10 

 

 

젠 폴락 미셸 Jen Pollock Michel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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