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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는 과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창녀였을까?

기사승인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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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1장의 오해

송가 211장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후렴)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아멘.”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드리거나 부었다는 말은 없다. 요한복음 12장에 따르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은 여인은 나사로의 누이, 베다니 마리아였다(요12:1-8). 이와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26:6-13과 마가복음 14:3-9도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드린 여인을 소개한다. 그러나 두 본문은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는다. 또한 누가복음 7:36-50은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앉으셨을 때, 무명의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한다. 대부분의 해설 찬송가는 찬송가 211장의 배경으로 바로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사건을 꼽는다. 그러나 이 무명의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결국 성경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드렸다는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찬송가뿐만 아니라, 2006년 개편된 21세기 찬송가(일명 “새 찬송가”)마저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드렸다는 가사를 그대로 수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황 그레고리 1세의 오해

591년 교황 그레고리 1세는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를 지은 한 여자”를 창녀 막달라 마리아로 규정하였다. “죄를 지은 한 여자”로 번역된 헬라어 하말토로스는 ‘죄인’sinner이라는 뜻인데, 이것을 창녀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세기 문헌에 따르면, 죄인은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기보다는 매우 포괄적인 뜻을 갖고 있다. 창녀도 죄인이지만, 간음한 사람이라든지, 율법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사람들, 또한 그러한 불경건한 자들과 교제하는 사람들도 죄인으로 간주되었다. 누가복음에서 죄인은 바리새인들의 비난 대상으로서 종종 세리와 함께 등장한다(눅5:307:3415:1). 그래서 혹자는 마태복음 21:31-32에 세리와 창녀가 쌍으로 나오기 때문에, 누가복음의 죄인도 창녀일 것이라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창녀가 나오는 본문과 누가복음에 죄인이 나오는 본문은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평행 본문이 전혀 아니다. 더욱이 누가복음에는 ‘창녀’를 뜻하는 포르네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눅15:30). 마침내 가톨릭교회는 1969년에 그레고리 1세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교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창녀로 오해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과연 어떤 여인이었을까?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바른 해석:
만남과 섬김

사복음서가 모두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누가복음만의 설명이 있다(눅8:1-3). 첫째,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여인이었다. 우리말로 “막달라”로 번역된 헬라어 막다레네는 ‘막달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서쪽에 지역에 위치한, 디베랴에서 북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곱 귀신”이라는 말은 그녀가 얼마나 악귀로 고생하였는지를 말해준다. 귀신 들림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녀를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 이러한 눌림과 갇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었다(눅4:18-19).

둘째,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중의 한 명이었다(눅8:3). 복음으로 영적 자유를 경험한 마리아는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 순회 전도 사역을 했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었다.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것은 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 복음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였다(눅19:8행4:32). 왜냐하면 소유는 탐심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을 뿐, 영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눅12:15). 소유(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누가복음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버지께 받은 물질을 허비한 둘째 아들의 이야기도 있고(눅15:11-24),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고 호화롭게 물질을 즐기는 부자의 이야기도 있다(눅16:19-31). 반면에 자기의 물질로 강도 만난 이웃을 도운 사마리아 사람이 있고(눅10:25-37), 은혜 받은 후 가난한 사람과 물질을 나누는 삭개오의 이야기도 있다(눅19:1-10). 따라서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잘 실천한 제자의 전형으로 나온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한 모범이라고 할 수도 있다(참고 행2:44-45).

여인들의 활약에 대한 초점은 누가복음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세례 요한과 사가랴 못지않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모습이 부각된다(눅1장). 또한 예루살렘 성전에는 시므온뿐만 아니라, 여자 선지자 안나가 아기 예수를 맞으며 예언한다(눅2장). 누가복음에만 예수님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며(눅7:11-17), 꼬부라진 한 여자를 안식일에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온다(눅13:10-17).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눅10:38-42),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요청을 들어주는 예화가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온다(눅18:1-8).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나오는 여인들의 활약 외에, 누가복음은 이렇게 다양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 두 제자 외에, 은혜 받은 여인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의 사역을 후원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누가복음의 전체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여인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은혜 받고 변화된 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의 사역을 후원하며 섬겼다. [전문 보기: 막달라 마리아는 과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창녀였을까?]
 

권해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작은목자들교회 협동목사. 「요한복음주석(고신총회출판국, 2016)의 저자.

권해생 CTK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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