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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아들의 아들

기사승인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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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지루한” 계보에서 영적 도전을 받다

   
 

가 봉독할 본문은 누가복음 3:23-38, 바로 예수의 족보였다. 혀가 꼬이는 이상한 이름의 77명이 등장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큰소리로 낭독하는 데만 꼬박 2분 30초나 걸리는 그 본문 말이다.

목사님이 내 얼굴에 드리워진 표정을 눈치 채고는 물었다. “이 본문을 봉독하게 돼서 당황스러운가요?” ‘아니요’ 라고 하면 안 돼. 내 속에서는 이랬지만, 나는 내 솔직한 심정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래요! 하염없이 긴 이 이름들을 읽고 나서 어색한 침묵 가운데 내 자리로 돌아오면 되지요?”

오해하지 마시길. 성경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말하자면 “성경바보”인 나는 그 족보도 좋아한다. 매주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종종 건너뛰는 성경 본문들을 자주 대면하게 된다. 난해하고 이상하고 지루한 구절들과 씨름하면서 일면 신앙이 더욱 깊어진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구절들은 교사로서의 나에게 도전을 주면 주었지, 나를 두렵게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창세기를 가르칠 때 족보들에 부닥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왜 이런 이름들이 이렇게 세심하게 보존되어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족보들에 대한 애정이 자라면서, 나는 우리가 무시하기 일쑤인 이러한 목록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더욱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유명한 성경구절들과 달리, 이 족보들은 모든 성경 말씀이 정말 유익하다고 정말 우리가 믿고 있는지 알아보는 시금석이 된다. 이 족보들에 대해 가르치고, 그 가치를 강조할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즐겼다.

그렇지만 그 긴 구절들을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그냥 큰소리로 읽기만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칙칙하고, 지루하고, 무의미한 목록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음색과 음조를 총동원해서 할 수 있는 낭독에도 한계가 있다.

나는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서 약간 떨면서 정적 속에서 그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그 위는, 그 위는, 그 위는…. 줄줄이 이러지는 이름에 이름….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침묵은 더욱 깊어졌다. 그런데 이 본문의 리듬에 빠져들면서 내 속에 있던 두려움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3분의 2쯤 읽었을 때, 목이 메어 왔다. “므두셀라”에 이르렀을 때 뜨거운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내 입에서 그 마지막 이름이 나왔을 때,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커지더니 예배당 안을 가득 메웠다.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고개를 들었을 때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보였다. [전문 보기: 아들의 아들의 아들]

 


젠 윌킨 아내, 엄마, 그리고 성경 교사. Women of the Word주 같은 분 없네None Like Him의 저자.
Jen Wilkin, “Son of a Son of a Son” CT/CTK 2019:1/2 

젠 웰킨 Jen Wilkin

<저작권자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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